약사
東洋史學科는 1969년 3월에 文理科大學 史學科가 國史/東洋史/西洋史의 3개 학과로 분리/독립되면서 처음 발족하였다.본과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생긴 동양사학과이며, 학과의 전통은 구 京城帝國大學 東洋史學科와 서울大學校 文理科大學 史學科 東洋史硏究室에 근원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동양사학과의 전통은 곧 韓國 東洋史學系의 생성/발전과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金庠基 교수가 1945년에 문리과대학 사학과에서 東洋史槪說/中國古代史練習 등의 강의를 시작한 것이 최조의 東洋史講議였으며 이는 또한 한국 동양사학계의 출발이기도 하였다. 金박사는 일제시대의 어려운 환경 하에서도 수준 높은 학문연구를 계속하였던 분으로 중국사의 기본 사료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엄격한 학문연구 태도로서 후학에게 모범을 보였다. 金교수의 학문적 입장은 동양사의 광범한 흐름 속에서 한국사를 이해하려는 것이었으므로 한국사와 韓中文化交流/中國古代史 등 광범위한 분야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러한 면은 그의 한국사에 관한 논저 외에 『東方文化交流史論考』(1948), 『中國古代史講要』(1948) 등의 저서에 잘 나타나 있다.
全海宗 교수는 처음에는 唐代의 均田과 太平天國에 관심을 가졌으나 후에는 주로 한국과 중국의 관계사를 연구하였으며, 1968년에 사임하였다. 그의 학문적 관심과 연구업적은 주저 『韓中關係史硏究』(1970) 외에도 『東亞文化의 比較史的 硏究』(1976), 『韓國과 中國』(1979), 『東夷傳의 文獻的 硏究』(1980) 등으로 공간되었다.
高柄翊 교수(전 서울대 총장)는 1961년에 정년퇴임한 金庠基 교수의 후임으로 부임하여 한국의 동양사학의 시야를 확대시켜주었을 뿐 아니라 한국 동양사학계의 수준을 제고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高교수는 東西 文化의 交流를 이해하려는 목적으로 中央아시아史에 관심을 가지고 元代 사회의 이슬람敎 문제를 연구하였고 나아가서는 元 제국의 구조 속에서 高麗/元 관계를 연구하였다. 高 박사는 또 東아시아의 史學史에도 관심을 가지는 한편, 韓中關係史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그러한 관심은 좁은 의미의 韓中關係가 아니라 東아시아 전체의 관련 속에서 이해하려는 것이었다. 그의 학문적 관심과 연구업적은 주저 『東亞交涉史의 硏究』(1970, 1974년 학술원 저작상 수상)를 비롯하여 『아시아의 歷史像』(1971), 『東亞史의 傳統』(1976), 『東아시아史의 傳統과 近代史』(1984) 등으로 정리/공간되었다.
閔斗基 교수는1969년에 全海宗 교수의 후임으로 부임하였다. 閔 교수는비단 동양사학과의 기틀 뿐 아니라 한국 동양사학계의 연구 기틀을 확립시켜 주었다. 閔 교수는 1950년대 이래 한동안 中國古代史를 연구하다가 뒤에는 淸代史/中國近代史/中國現代史로 연구의 관심을 점차 옮겨갔다. 閔 교수의 연구성과와 학문적 관심은 먼저 『中國近代史硏究-紳士層의 思想과 行動-』(1973)으로 나타났다. 이는 종래 韓中關係史 분야에 중점이 놓여져 있던 국내의 동양사학계의 연구풍조를 극복하고 中國史의 내면적인 문제를 본격적으로 연구한 국내 최초의 저서였으며, 그 문제의식이나 연구방법, 연구내용 등에 있어서도 국내 중국사 연구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준 확실한 이정표가 되었다. National Polity and Local Power, The Transformation of Late Imperial China(Harvard, 1989)는 이 가운데 5편의 논문과 다른 한 편의 논문이 영역되어 출간된 것이다. 閔교수의 그후 연구업적은 『中國近代史論』(I, II. 1976, 1981), 『中國近代改革運動의 硏究-康有爲 中心의 1898年 改革運動』(1985, 서울大 東洋史學硏究叢書 제2집. 1988년도 학술원 인문과학 부문 저작상 수상), 『中國國民革命의 分析的 硏究』(공저, 1985), 『辛亥革命史-中國의 共和革命, 1903~1913-』(1994), 『中國에서의 自由主義의 實驗―胡適(1891-1962)의 思想과 活動―』(1996), 『中國初期革命運動의 硏究』(1997), 『시간과의 경쟁 : 동아시아 근현대사 논집』(2001) 등으로 정리되어 있고 몇 권의 편역서 외에 자신의 학문적 이상과 연구편력은 『閔斗基自編年譜略』(1992)으로 소개하였다.
吳金成 교수가 1975년 3월, 서울대학의 종합화 계획에 따라 대학이 관악캠퍼스로 이전되면서 사범대학 역사교육과에서 본과로 전입하여 中國近世史 강의를 담당하게 되었다. 吳 교수는 처음에는 明淸時代의 學校와 科擧制를 社會史的으로 연구하다가 1970년대 후반부터는 明淸時代의 紳士層의 사회경제적 역할을 陽子江 中流 3省의 사회변동과 관련시켜 연구하였다. 현재는 明末淸初의 사회변화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저서에는 『中國近世社會經濟史硏究-明代 紳士層의 形成과 社會經濟的 役割-』(1986, 서울大 東洋史學硏究叢書 제3집)과 『明末淸初社會의 照明』(공저, 1990)이 있다.
李成珪 교수는 1979년 1월에는 부임하여 中國古代史 강의를 담당하게 되었다.李교수는 본과에서 中國古代史를 전공하여 처음에는 門閥貴族과 士大夫의 문제를 政治史와 思想史的인 측면에서 접근하였으나 1970년대 말부터는 새로 발견된 銘文과 簡牘資料를 이용하여 戰國時代의 支配體制를 연구하였다. 현재는 中國古代史에 대한 종합적이고 총체적인 접근을 위하여 考古/美術/金石學/神話 등에 관해서도 폭넓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저서로는 『中國古代帝國成立史硏究-秦國齊民支配體制의 形成-』(1984, 서울大 東洋史學硏究叢書 제1집) 외에 수 권의 편역서가 있다.
金容德 교수는 1980년 4월에는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日本近代史를 전공한 후 본과로 부임하여, 본과 뿐 아니라 한국 동양사학계에 처음으로 日本史 전공자를 가지게 되었다. 金교수는 처음에는 日本 明治時代의 地組改正 문제를 연구하였으나 뒤에는 日本 近代의 政治史와 經濟史 전반에 대하여 폭넓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중이다. 저서로는 『明治維新의 土地稅制改革』(1989, 서울大 東洋史學硏究叢書 제5집), 『日本近代史를 보는 눈』(1991), 『19세기 日本의 근대화』(공저, 1996)와 1권의 번역서가 있다.
朴漢濟 교수는 1985년 2월에는 부임하여 中國中世史 강의를 담당하게 되었다. 朴 교수는 본과에서 魏晉南北朝隋唐史를 전공하여東아시아에 있어서의 遊牧民族의 역할을 해명하기 위하여 胡漢體制라는 가설을 설정하고 魏晉南北朝로부터 隋唐時代까지의 胡漢 관계의 전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정력적으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저서는 『中國中世胡漢體制硏究』(1988, 서울大 東洋史學硏究叢書 제4집), 『유라시아천년을 가다』(공저, 2002), 『영웅시대의 빛과 그늘』(2003), 『강남의 낭만과 비극』(2003), 『제국으로 가는 긴 여정』(2003) 등이 있다.
金浩東 교수는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中央아시아史를 전공하고 1986년 4월에는부임하였다. 이로써 본과 뿐 아니라 한국 동양사학계에 처음으로 中央아시아史 전공자를 가지게 되었다. 金 교수는 처음에는 中央아시아의 遊牧帝國과 오아시스 社會를 이해하기 위하여 19세기 중엽의 新疆省의 무슬림反亂을 연구하였으나 현재는 몽골제국사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저서로는 『근대중앙아시아의 혁명과 좌절』(1999), 『황하에서 천산까지』(1999), 『Holy War in China: The Muslim Rebellion and State in Chinese Central Asia 1864-1877』(2004, Stanford)와 수권의 역서가 있다.
劉仁善 교수는미국 미시간 대학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베트남 近代史를 전공하고 高麗大學에서 강의하던 중 1994년 3월에 본과로 부임하여 베트남과 東南아시아史 강의를 담당하게 되었다. 劉교수는 처음에는 17~18세기 베트남의 法과 社會를 연구하다가 현재는 베트남의 黎朝後期의 國家와 社會 問題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 중이다. 저서로는 『베트남史』(1984) 외에 Law and Society in Seventeenth and Eighteenth Century Vietnam(1990, 1993년에 베트남에서 같은 제목으로 베트남어로 번역/출간됨)이 있다.
金衡鍾 교수는 본과에서 中國近代史를 전공하였고 1998년 9월에 故 閔斗基교수의 후임으로中國近現代史 강의를 담당하게 되었다. 金衡鍾 교수는 초기에는 辛亥革命時期의 혁명운동과 사상사 연구에서 출발하였으나 이후 淸末 新政期의 改革과 紳士層의 動向으로 관심을 돌려 淸末의 新政改革과 江蘇省지역의 紳士·商人層의 동향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완성하였다. 이후 좀더 시기를 넓혀 近代中國(淸末과 民國시기 초기를 중심으로)의 財政問題와 敎育改革·地方自治 등 淸末民初 地方紳士層(엘리트)의 장기적인 동향으로 연구관심을 확대시키고 있다. 역서로는 李澤厚 著, 『중국현대사상사의 굴절』(지식산업사, 1992)가 있고 저서로는 『淸末新政期의 硏究:江蘇省의 新政과 紳士層』(서울대학교출판부, 2003)가 있다.
金永植 교수는 본래 자연대 화학과 소속이었으나2001년 10월에 본과로 전입하였다. 金교수는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화학물리를 전공했고,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서 과학사를 전공하였다. 이후 특히 주희를 중심으로 하여 중국과학사를 연구하였고, 현재 중국과학사 전반 및 한국과학사 에 걸쳐, 연구 분야를 넓혀가고 있으며, 저서로는 『역사와 사회속의 과학』(1994), 『과학사신론』(共著, 1999), The Natural Philosophy of Chu His (Philadelphia American Philosophical Society, 2000), 『한국의 과학문화 – 그 현재와 미래』(共著, 2003) 등이 있다.
李恩廷 교수는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오스만제국사를 전공하였고 2004년 2월에는 본과 부임하여 이슬람사 강의를 담당하게 되어 한국 동양사학계에서는 최초로 오스만제국사 연구자를 가지게 되었다. 李恩廷 교수는 초기에는 원대를 중심으로 출발하였으나 이후 오스만제국사로 관심을 돌려 17세기 이스탄불의 길드를 주제로 하여 박사 논문을 완성하였다. 현재 17세기의 오스만 제국을 중심으로 연구를 확대하고 있다. 저서로는 Guild Dynamics in Seventeeth-Century Istanbul: Fluidity and Leverage (Leiden: E. J. Brill, 2004)가 있다.
丘凡眞 교수는 본과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고 서울시립대학교에서 근무하다, 2007년에 본과 조교수로 부임하였다. 丘凡眞 교수는 학위과정 중에는 주로 淸末 新政期를 연구하였으며, 박사학위논문은 鹽政改革을 주제로 완성하였다. 현재는 관심을 淸史 전반으로 확장하여, 淸의 대외관계 관리방식에서 나타나는 특성에 주목하고 있다. 아울러, 淸代의 鹽政문제와 사회경제사에 대한 연구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역서로는 Philip Richardson 著, 『쟁점으로 읽는 중국 근대 경제사 1800∼1950』(푸른역사, 2007) 등이 있다.
朴秀哲 교수는 日本中世史를 전공하였고, 본과에서 석사학위를, 日本 京都大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전남대학교에서 근무하다, 2009년에 본과 부교수로 부임하였다.
朴薰 교수는 日本近現代史를 전공하였고, 본과에서 석사학위를, 日本 東京大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국민대학교에서 근무하다, 2009년에 본과 조교수로 부임하였다.
金秉駿 교수는 중국고대사를 전공하였고, 본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동안 한림대학교에서 근무하다가 2011년 3월 본과 교수로 부임하였다.
Koh Keng We(郭根維) 교수는 동남아시아사, 인도양 해양사를 전공하였고, 싱가포르 국립대학에서 석사학위를, 하와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East-West Center (Honolulu, USA), Chinese Heritage Centre (Singapore)에서 연구하다가 2011년 3월 본과 조교수로 부임하였다. 2014년 6월에 사임하였다.
趙晟佑 교수는 중국중세사를 전공하였고, Cambridge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2년 9월 본과 조교수로 부임하였다.
Martin Grossheim 교수는 동남아시아사, 베트남사를 전공하였고, 독일 파사우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독일 베를린훔볼트대학교 조교수와 파사우대학교 조교수, 부교수 등으로 재직한 바 있다. 2019년 3월 본과 부교수로 부임하였다.